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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작성일2022.09.20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5:45 AM

택시의 시계 위로 숫자가 붉게 떠올랐다. 5:45 AM, 해 뜨는 시간. 호텔까진 10분이 남았다. 꼭두새벽부터 어 딜 다녀오신 겁니까. 그가 묻는다. 아무도 없는 갈라타 타워를 보고 싶어서요. 내가 답한다. 아무도 없는 거리 에 아무도 없는 시간, 아무도 없는 이스탄불. 그와 나 만이 도로를 달렸다. 텅 빈 도시가 채워지기 전까지, 10분이 남았다.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인근 Galata Köprüsü,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주전자

앙카라 성내에선 매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주전자를 만 든다고 했다. 낮이면 집을 나서 성으로 와 금속을 때리고 열을 가하고 광을 내고 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냄비도, 그릇도 아닌, 주전자를 만들었다. 담아 두기보다 따라내 버리는, 그래서 결국 비워지지만 이내 또 채워지고 마는, 주전자를.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말 없는 호객

이스탄불에서 제일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거 리에 밴 케밥 냄새다. 양이며 소며 각종 기름진 고기들 이 구워지면 부글부글 식욕이 들끓는다. 이스티클랄 거리의 케밥맨은 호객을 하지 않는다. 그저 냄새를 피 울 뿐이다. 고기 탄내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도 유혹 적이란 사실을, 그도 내 배도 아는 것이다.

이스탄불 이스티클랄 거리 İstiklâl Caddesi,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어

블루 모스크의 오후. 턱 밑으로 끝없이 땀이 방울 졌고, 이스탄불의 태양은 식는 법을 잊었다. 나의 육체는 너무나 육체였다. 체온이 오르고 액체가 흘렀다. 이럴 때면 육체가 육체인 것이 번번이 난 감하고 미덥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지치는 법을 잊었다. 카메라에 서로를 담고 또 담고, 오후를 기 록했다. 잊지 못할 순간이 지금 우리 곁을 지나가 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나도 덩 달아 카메라를 들었다.

이스탄불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 Sultan Ahmet Camii,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친절의 가격

앙카라에선 길을 잃었다. 몇 시간째 같은 가판대 앞 을 지나치고 있었다. 보다 못한 그가 나섰다. “거길 가 려면 트램을 타야 돼요. 내 버스 카드를 줄 테니 이걸 써요.” 낯선 곳에서의 이유 없는 호의엔 대가가 있겠 지. 나는 여행 초보자가 아니었다. “Do I have to pay? (돈을 내야 하나요?)” 그가 크게 웃었다. 어금니가 번 쩍였다. 5분 뒤에 트램이 오면 놓치지 말고 타요. 그건 거래가 아니었다. 그의 친절에 값을 매기고 말았던 날. 나는 여전히 여행 초보자였다.

앙카라 크즐라이 Kızılay, Ankara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기억을 먹고 자라다

꼬마는 덩치 큰 트램에 올라탔다. 손바닥만 한 햇 빛을 받으며 두 눈으로 거리를 살폈다. 세상의 모 든 냄새와 소리를 관찰하겠단 것처럼. 말리는 어 른도, 주의 주는 어른도 없었다. 그는 이제 이스탄 불의 기억을 먹고 자랄 것이다. 갈라타 타워의 벽 돌과 아야 소피아 성당의 여름 공기와 시미트 빵 의 온기가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팔다리를 통통 하게 살찌울 테다.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 여행이 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는 걸까.

이스탄불 이스티클랄 거리 İstiklâl Caddesi,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노을맛 안주

이날 두 친구의 안주는 노을이었다. 앙카라 도심에 살구빛이 살금살금 내려앉자 그들은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 한 모금에 노 을 한 입. 안주가 좋으니 술도 달았던 모양이다. 맥주병은 금세 투명한 소리를 냈다. 병이 비워지자 하늘도 비워졌다. 태양이 저문 자리엔 달과 별이 떴다. 취하기 좋은 날이었다.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보이지 않는 기록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던 배 위에서 그들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남들처럼 셔터를 누르지도, 수다를 떠는 법도 없 었다. 이따금 담배를 피우고, 같은 곳 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그렇게 그들은 바다를 마음에 새겼다. 기록이란 반드 시 물리적 결과물이 있어야 되는 줄 알 았는데. 보이지 않는 기록의 힘이 때론 더 세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 Boğaziçi,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달콤한 술래잡기

아이스크림이 도망친다.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떨어진다. 왼쪽으로 왔다, 오른쪽으 로 달린다. 실력 있는 술래다. 두 손이 헐떡인다. 바삐 쫓아가 봐도 잡히는 건 허공뿐. 결국 그녀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도 말랑한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술래가 잡 혔다. 세상 가장 달콤한 보상이 주어졌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성당 인근 Ayasofya, Istanbul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함께 흐르는 시간

그들이 나를 본다. 나의 카메라도 그들을 본다. 진 한 눈 맞춤이 이어진다. 그들이 웃는다. 나는 찍는 다. 부대끼는 일들은 잠시 젖혀 둔 채, 시간에 몸을 맡겼다. 늦은 오후, 앙카라 성. 우리의 시간은 따로 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프레임을 채우다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어 떤 것도 제외시키지 않고 한껏 욕심부리고 싶은 풍경 을 만났다. 갈라타 타워 꼭대기 층. 이스탄불이 발아 래 깔리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꽉 채운 프레 임이 버겁지 않은 이유는 피사체를 향한 나의 마음이 가볍지가 않아서다.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Galata Kulesi, Istanbul

 

 

저작권자ⓒ ㈜여행신문 트래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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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