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살충제 계란 파동 그 후
유럽연합 국가에서 살충제 계란이 논란이 되며 국내에서도 지난 8월 살충제 계란이 등장했다. 시중에 유통된 계란 중 살충제 잔류치가 초과 검출된 제품이 발견됐고 그 농가 리스트가 공개됐지만 난각코드 또한 부정확하다고 알려져 소비자들의 혼란이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나 상황은 일단락됐고 치솟았던 계란값도 내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계란 소비는 급감한 상태다. 하지만 계란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맛도 영양도 좋은 식품이 드물기 때문에 언제까지 계란 소비를 피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식품 전문가 최낙언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있다”며 평소에도 식품공학자로서 음식에 관련한 각종 미신을 과학으로 물리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위험치 자체가 독성 실험에서 몸에 해를 주는 양의 1/100로 정해지기 때문에 기준치의 100배를 먹어야 몸에 해가 되는 셈”이라고 말한다.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지만 기준치를 약간 초과한 식품을 섭취해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는 것. 사람들이 어떤 음식에 발암 물질이 있느냐 없느냐를 화제로 삼지만 실제 발암 물질은 일반 공기 중에도 물속에도, 모든 곳에 있기 때문에 문제는 발암 물질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양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허용 기준치를 넘은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는 계란이 있다면 분명히 문제이고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계란 자체를 안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일반 살충제 외에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동물 복지 양계농장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것. 농장주는 누구보다 정직하게 농장을 운영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는 DDT가 위험물질로 널리 알려진 이유와도 연관되는데, DDT가 다른 살충제와 비교해 그 독성이 세기보다는 다른 독성 물질보다 분자 안정성이 높아 체내는 물론 땅에도 오래도록 잔류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장주의 생산 방식과 상관없이 농장이 자리 잡은 땅에 몇십 년 전이라도 DDT가 살포됐다면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진다는 것.

유기농, 동물 복지는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문정훈 서울대 교수는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의 해답이 정부의 유기 농가 규제 강화나 동물 복지 제품을 먹는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기농법이나 동물 복지형 농장을 지지하지만 그것은 생명 윤리, 지구 환경 때문이지 우리의 건강 때문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DDT가 검출된 농장도 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이며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하는 일반 양계장과 달리 동물 복지 농장의 닭은 방목형으로 길러지기 때문에 정해진 사료 외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아무것이나 주워 먹는다. 그만큼 독성 물질을 섭취할 위험도 높다는 설명이다. DDT뿐 아니라 조류독감 등 1차 감염을 통한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도 돌아다니는 범위가 넓은 동물 복지형 농장의 동물이 더 높다. 많은 이들이 돼지고기는 기생충 감염의 위험 때문에 바짝 익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1993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에서 단 한 번도 기생충이 나온 적은 없으며, 이는 공장식 사육으로 돼지가 땅을 파 먹지 못하고 정제된 사료만 먹은 결과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방목보다도 윤리적으로는 지탄을 받는 공장식 사육이 식품으로서 안전성은 더 높으므로 식품 안전의 대안으로 동물 복지가 최선책이 되진 못한다는 얘기다. 동물 복지를 지향하는 이유는 동물의 복지와 생명권, 윤리 의식 때문인 것. 이는 유기농 농산물도 마찬가지로 유기농이라고 영양소가 더 풍부하거나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며,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윤리적 소비인 것이지 ‘내 건강을 위한 소비’라는 생각의 프레임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지구를 위한 소비, 생명을 위한 소비를 지지하면서 내 몸을 지키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식품은 약이며 동시에 독이다
이에 대해 최낙언 전문가의 대답은 간결하다. “현대의 식품 섭취 문제는 가공식품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문제다. 어떤 음식이든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다. 골고루 적게 먹으면 된다.”우리나라에는 유독 ‘음식이 보약이다’라는 사상 때문에 음식이 몸에 끼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한다. 이를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이라 부르는데 ‘음식이 사람의 건강과 병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해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을 일컬으며 이런 풍조를 비판하기 위해 생겨난 단어다. 아무리 영양소가 풍부한 좋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독이 되는 성분을 가지고 있으므로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 또한 ‘탄수화물은 나쁘다, 지방은 나쁘다’는 등 특정 영양소를 배척할 경우에도 오히려 몸에 무리가 생긴다. 천연 식품을 맹신하고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이들도 많은데 실제로는 몸에 좋다고 알려진 산 속의 한약재나 나물, 살균하지 않은 야생 동물 등을 먹고 중독되어 죽는 일이 살충제나 가공식품을 먹고 죽는 일보다 훨씬 많다. 최낙언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식품의약처가 허가한 식품은 먹어서 문제가 안 생기기 때문에 허가한 것들이다.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인데, 이건 그 어떤 식품이라도 마찬가지다. 해조류에는 중금속이, 채소에는 아질산이 많다. 그렇지만 적당히 먹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조차 많이 먹으면 물 중독으로 사망할 위험이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면 소비가 급격히 늘고 어떤 음식이 위험하다고 하면 소비가 급격히 주는 일도 결국 음식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푸드 패디즘’ 때문. 우리는 좀 더 음식의 영향력, 특정 음식의 공포에서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당신의 주방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꼼꼼히 재료를 살펴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은 나의 건강을 넘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 노력의 포커스가 잘못 맞추어져 있다면? 건강 때문에 선택한 유기농 제품이나 동물 복지 제품은 건강과 크게 상관이 없고 천연 식품이라고 무조건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정부 인증을 받은 식품 가공 공장과 집 안의 부엌 환경을 비교 검사해보면 부엌에서 훨씬 많은 세균이 검출된다. “최대한 세균이 적은 음식을 먹고 싶다면 집안에서 직접 조리하지 말고 대기업의 인스턴트식품만 먹는 편이 낫다”고 최낙언 전문가는 말한다. “최근 ‘분쇄 가공육 조리 위험’으로 논란이 된 햄버거 패티의 위험성 논란도 마찬가지다. 세균에 감염된 고기를 갈아 조리할 경우 감염된 부위가 뒤섞이며 그 부위가 패티 안쪽으로 들어가 고기를 다 익히지 않으면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인데, 애초에 감염된 고기를 사용하는 자체가 이미 문제이며, 분쇄육 조리 시 안까지 다 익도록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조리의 기본이기에 패스트푸드점의 패티가 집에서 만든 여타 분쇄육을 사용한 요리보다 더 위험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패스트푸드점의 음식을 무조건 믿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를 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집보다 위험 확률이 오히려 낮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은 단순히 ‘깨끗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직접 조리한 음식이 주는 위안, 내가 재료와 조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나와 가족이 좋아하는 맛 내기 등이 ‘집밥’의 가치를 높인다. 너무 심한 결벽은 독으로 작용한다.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질병이 현재는 암이지만 갈수록 질병 자체보다도 면역력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오는 이유도 이것이다. ‘청결의 역습’인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세균과 싸우며 면역 시스템을 강하게 키우는데 세균을 지나치게 제어하는 환경을 만들다 보니 오히려 갈수록 면역력이 약해져 문제가 생긴다. 독은 도처에 있고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는 식품 섭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즐겁게, 골고루, 적당히 섭취하라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옛날 식습관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다양한 식품 가공법의 발달, 공중위생 관리로 현대인의 수명이 훨씬 길어진 것이 현실. 산에서 딴 나물을 먹고 토종닭이 낳은 달걀이나 야생육 등을 먹는 식습관이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정부나 식품 기업을 믿을 수 없다면? 문정훈 서울대 교수는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윤리 의식을 키우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식품을 비윤리적으로 생산하려고 마음을 먹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면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를 완벽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정부의 규제 강화를 성토하지만 이미 현재 정부의 규제도 충분히 강력하고 복잡하다. 유기농 인증제나 무농약 인증제 등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규제와 절차를 늘리기만 한다면 결국 그 복잡한 절차에 지쳐 다른 방법을 찾는 생산자가 많아지리라는 것이 실제로 농업 활동을 직접 경험해보고 오래도록 지켜본 문 교수의 현실적인 지적이다. 결국 인증제도가 식품의 안전을 어느 정도는 보장할 수 있지만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규제를 넘어서는 윤리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질 좋은 식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는 생산자, 그리고 그 가치를 단순히 건강 차원을 넘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소비자가 만났을 때 더 나은 식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나친 염려에서 벗어나 윤리적인 소비를 하며 즐거운 식생활을 누리는 것이라는 뻔한 결론이 나온다. 식품 전문가 최낙언과 문정훈 교수는 어떤 식생활을 유지하는지 물어보았다. 최 전문가는 가공식품이든 천연 식품이든 좋아하는 것을 골고루, 적당히 즐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문 교수는 식품 윤리, 생명 윤리를 위해 친환경 농산물이나 동물 복지 식품을 이용하려고 노력하며, 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맛과 품질을 인정받은 지리적 표시제 인증을 받은 산물을 구입한다. 너무 큰 염려는 멀리하고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식생활을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이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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