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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예술가 황란 작가

작성일 2019.10.10

수행하는 예술가 황란 작가 

 

 

 

 

뉴욕을 베이스로 전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황란 작가는 단추를 벽에 박아 그녀만의 독특한 조형 작품을 만들어낸다. 일일이 단추 구멍에 핀을 꽂아 망치로 두들기는 수행과도 같은 작업은 이제껏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물을 탄생시켰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섬세하고 감각적인 작품을 구현함으로써 그녀만의 공고한 작품 세계를 이루어낸 것. 특히, 9.11 사태를 가까이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은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텍사스 휴스턴 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에서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미국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 박물관과 에르메스 파운데이션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몇몇 작품은 뉴욕대학교와 두바이 오페라하우스 로비에 영구 컬렉션으로 들어가 있다. 이외에 파리, 뉴욕, 베이징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했으며 현재 브루클린 미술관, 버지니아 헤리티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9월에는 두바이의 레일라헬러 갤러리에서, 2021년에는 벨기에의 팔레 드 보자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1년의 반은 뉴욕에서, 나머지 반은 한국에서 지내는 작가가 두바이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평소 그녀의 작품에 대해 관심이 많던 마크 테토와 만나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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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안녕하세요! 이렇게 멋진 작업실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두바이 개인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라 작업실이 복잡하네요.


M 전시회 준비 때문에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돼 저는 좋습니다. 가까이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네요. 맞아요. 제 작품은 스케치를 하고 컴퓨터 작업을 통해 단추의 색깔과 높낮이를 맞추고 난 후 일일이 망치질로 단추를 박아야 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규모가 큰 것들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죠. 제 작업실에 제일 많은 게 망치, 못, 단추, 사다리 이런 것들이에요. 뉴욕 작업실에는 여기보다 훨씬 더 많고요.

 

M 뉴욕을 베이스로 활동하는데, 어떻게 뉴욕에 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뉴욕 출신이라서 더 반갑게 느껴지네요. 미술을 전공하고 회화 작가로 서울에서 활동하다 정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났어요. 30대 중반에 떠났으니 많이 늦었죠. 또, 유학 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해서 돈을 모으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어요.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제가 뉴욕에 도착한 후 한국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그마저 모았던 돈이 반토막 나고 학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힘든 생활이 시작됐죠. 그래도 그때는 하루하루 재미있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다웠거든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 빼고는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죠.


M 유학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겠어요. 부모님이 도와주시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저 혼자 힘으로 공부하고 생계를 유지하며 작업을 해야 했어요. 학교도 휴학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뉴욕에 스트랜드라는 큰 헌책방이 있는데 책값이 굉장히 싼 편이에요. 그곳에서 제가 보고 싶은 책도 실컷 보면서 공부했고요. 또, 아까 말했듯이 뉴욕은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공부가 되더라고요. 멋진 게 너무 많아서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넘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웃음). 그때는 어떤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나는 정말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이곳에 왔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견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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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작가로 데뷔한 거군요? 원래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뉴욕의 매력에 빠져서 계속 머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수 회사에 취직해서 도안을 그리는 일을 했죠. 풀타임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나 주말밖에 없었고요. 하지만 패션에 관심도 있었던 데다 단추와 실이라는 소재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활하면서 제 스튜디오의 벽에 단추와 실로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캔버스 살 돈도 부족했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는 제 스튜디오의 벽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 후 제 나름대로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열고 큐레이터들을 작업실에 초대했어요.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어 그 작품을 통해 제 작업실로 찾아오는 큐레이터들도 있었죠. 그렇게 조금씩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죠.


M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보통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데, 작가님은 직접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갤러리 관계자들을 초대했으니, 참 기발한 방법이에요.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처한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시작한 거예요. 한 큐레이터가 제 오픈 스튜디오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서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게 또 계기가 돼 좀 더 큰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됐죠. 그러면서 캔버스나 단추, 핀 등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캔버스 위에 작업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후로 작품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으니 더 많은 곳에서 전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요. 지난 22년간 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기에, 좋은 예술가는 꾸준히 성실하게 한 계단 한계단 올라가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해진 것 같아요.


M 작품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주로 기와지붕, 매화 등 동양적인 피사체를 표현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들이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집에서 붓글씨를 쓰거나 사군자를 그리셨던 분이었거든요. 저도 옆에서 먹을 갈다 함께 그림을 그리며 컸어요. 그래서 매화가 친근하고 익숙한 소재였죠. 기와지붕 역시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절에 다니곤 했는데 그때 기와의 매력을 알아본 것 같고요.


M 한국 작가로서 뉴욕이라는 외국에서 활동하며 매화나 기와지붕 같은 재료를 사용했어요. 한국에 대한 어떤 이미지나 특징을 담으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제 작품을 보고 외국의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어요. 표현은 현대적이지만 메시지는 동양적, 한국적이라고요. 제가 표현하는 기와지붕은 서울의 5개 궁을 합쳐놓은 형상인데 중국이나 일본의 기와지붕과는 다르죠. 좀 더 단아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요? 매화는 제 작품의 주제를 잘 나타내주는 소재예요. 가장 이른 봄에 활짝 피었다가 바로 그다음 날 후드득 떨어져서 사라지거든요. 제 작품에는 ‘영원 한 것은 없다’라는 메시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한국 작가로서 열심히 활동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M 작가님의 작품 활동을 보니 다른 한국 작가들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단색화 작품을 하는 작가 중에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그 과정이야 말로 작품이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만났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작업도 비슷한 것 같아요. 망치질하는 행동 자체가 명상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보셨네요. 제 작업은 면벽수행하는 스님의 수행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망치질하는 소리가 스님의 목탁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벽에 망치질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미운 사람도 용서하게 되고요(웃음). 오랜 기간 동안 벽에 망치질을 하는 건 분명 고행이 맞아요. 굉장히 고된 일이에요.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M 네, 대부분은 명상이나 작품 둘 중 하나를 택하는데 작가님은 둘 다 이뤘다고 볼 수 있나요? 저는 명상 위에 입체 작업을 합니다. 저만의 아이콘, 형상을 만들고 빛에 의해서 작품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죠. 그 모든 과정이 입체적인 작업을 만드는 거예요. 망치로 단추를 박아서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영상을 얹어요. 그러면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M 작업실에서 독수리나 날개 이미지도 많이 보여요. 독수리는 미국의 상징물 이미지가 강한데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수리는 바로 저라고 생각하면 돼요. 저는 미국에서 22년 동안 활동한 작가이고 한국인이기도 하잖아요. 뉴욕에 기반을 둔 한국인 작가. 작품을 다시 보면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어깨 위에 기와지붕이 얹어져 있어요. 그게 바로 접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짊어지고 다녀요. 껍데기는 한국 사람이지만 영어도 쓰고, 한국어도 쓰고. 미국에서 활동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저의 모습이 바로 독수리예요.


M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다른 작품들에는 어떤 메시지가 있나요? 제 작품은 우리의 삶을 직시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단추로 만든 새가 있는데 날개가 밑으로 다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죽음에 다다랐지만 환생해서 다시 돌아오는걸 의미해요. 삶의 그런 긴장감, 우리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귀하다,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자 날개가 떨어지는 표현을 해보았고요. 또 파도 위에 세워진 궁궐도 비슷해요. 궁궐은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을 상징하지만 알고 보면 영원한 권력은 없어요. 태풍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튼튼하게 궁궐을 만들지만 그 안의 권력만큼 무상한 게 없죠.


M 이제까지 다양한 작품을 해왔는데,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떤 것들이에요? 처음엔 콜라주부터 시작해서 벽 설치, 패널, 플렉시, 영상, 조각 작업까지 이어왔는데요. 이렇게 변화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요. 조형 조각 작품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반응이 좋아서 계속 진화시킬 예정이에요. 독수리 날개 조형 위에 매화를 꽂은 작품인데 뉴욕에서 전시했을 때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M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에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한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뜻이에요. 작가님의 작품 활동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얘기 많이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크가 제 작품을 정말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아 저야말로 고마워요.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을 많이 선보일 테니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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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촬영협조 경복궁 송도 한옥마을점(032-834-2345) 사진제공 LG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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