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스토리

아주대 김경일 교수는 ‘보석 같은 회사’를 ‘신뢰가 있는 회사’라고 재정의했다. 신뢰가 가득한 회사는 귀하고, 구성원과 조직이 함께 아름답게 빛을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뢰를 잃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소개하며, 진심을 전하는 방법에 관해 역설적으로 설명하였다.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반대로 뒤집어보자. ‘우리는 언제 신뢰를 잃는가?’라고. ‘역방향 작업’을 활용하면 미로 같은 질문의 해답도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보석 같은 회사와 신뢰로운 회사
LG생활건강은 ‘보석 같은 회사’를 지향한다고 들었다. 보석의 정의는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지니며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하고 희귀한 돌’이다. 보석의 뜻을 이루는 단어 중 심리학자인 필자 눈에 먼저 들어오는 낱말이 있다. 바로, ‘쉽게 변하지 않고 희귀하다(즉 드물다)’는 말다.

학문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귀한 흐름을 ‘신뢰롭다’고 표현한다. 어떤 특이한 현상이 특정 상황에서 일관적으로 발생하면 이를 두고 ‘통계적으로 신뢰로운 결과’라고 부른다. 그러니 심리학자에게 ‘보석 같은 회사’는 ‘신뢰로운 회사’, ‘신뢰가 그 안에서 자리 잡은 회사’라고 자연스럽게 재정의된다.
우리는 보석처럼 변하지 않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무언가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신뢰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는 서로 신뢰하는 조직과 문화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신뢰하는 조직과 구성원은 서로 헌신하고, 발전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다. 조직을 신뢰하면 애착이 생겨 구성원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신뢰를 거꾸로 생각하는 이유
이제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남는다.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물론 쉽게 해답을 구할 물음이 아니다. 크고 대단한 것일수록 정곡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오리무중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심리학자들은 이른바 ‘역방향 작업(backward working)’을 종종 권한다. 말 그대로 반대로 접근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많이 하던 미로 찾기 게임을 떠올려 보자. 입구에서부터 출구로 향해 나가다 중간중간 막혀 애를 먹지 않았나. 하지만 반대로 출구에서 입구로 길을 찾으면 오히려 쉽게 탈출구로 나올 수 있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다. 즉, 좋은 무언가를 가질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을 잃을지 고민하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니 신뢰를 놓고 거꾸로 생각해보자. 신뢰를 잃는 방법 말이다. 또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행하는 언행 중 신뢰를 허물어뜨리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누구나 싫어하는 불공정과 불평등
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걸쳐 자주 사용되는 게임 형태의 실험이 있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이 게임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하는데, 우선 플레이어 A에게 10만 원이 주어졌다고 치자. A는 그 돈 일부를 B에게 나눠줘야 하며, 얼마를 줄지는 A의 자유다. B는 A가 주는 돈을 받거나(수용),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만약 B가 제안을 수용하면 제안대로 서로 돈을 나누어 가지고, 거부하면 A와 B 모두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만일 A가 5대 5로 돈을 나누자고 제안한다면 B는 수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A가 자신이 8만 원을 가지고 B는 2만 원만 가지라는 불공정한 제안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제안에 대부분의 B들은 거부한다. 그런데 이 같은 선택은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A의 제안을 수용하면 어쨌든 공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수용해 얻을 수 있는 돈이 몇 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발생한다. 인간은 이 정도로 불공정과 불평등을 혐오한다. 자신이 뭔가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신뢰와 멀어지는 방법 : 연줄에 집착하라!
뇌과학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그 이유에 관한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인간은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뇌의 일부 영역(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평상시보다 훨씬 활성화되는데, 이 영역은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가 제안을 받으면 대부분 불공정한 제안도 쉽게, 그리고 얼마든지 받아들인다.
우리 뇌가 정상일 때도 잘못된 신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른바 ‘라인’이라고 부르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다. 그런 때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일을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에 기반한 행동인 것 같지만 사실 신뢰를 가장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직 내에서의 부조리도 대부분 이 같은 과정을 거친다. 불공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빈번한 확률로 그가 철석같이 믿는 주위 사람들의 지시를 아무 생각 없이 따른 경우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끈끈한 단결력을 최고의 조직역량으로 삼는 문화권에서는 더더욱 위험하다. 이는 신뢰가 아니다. 학연·혈연·지연이며, 부서이기주의일 뿐이다.
진정한 신뢰는 불공정함과 부조리한 것에 ‘No!’라는 말을 서로에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쌓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조직에는 신뢰가 쌓인다.

잔소리 많이 하는 상사가 후배들에게 신뢰받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소통을 위한 대화는 많을수록 좋지만, 지시나 메시지를 귀가 따갑도록 주입하는 것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뢰는 떨어뜨리는 지름길 : 지겹게 주입시켜라!
독일 심리학자 마크 안드레 레인하르트 교수와 메티아스 메스너 교수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흡연 폐해를 강조하는 광고를 보여줬는데 처음에는 광고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같은 광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점차 그 메시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인간은 무언가에 친숙해지면 오히려 신뢰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친숙함과 권위를 반비례 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친숙할 수밖에 없는 부모나 친구들에게 높은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이 조언이나 경고를 해도 우리는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어떤 메시지가 지나치게 반복되면 그만 듣고 억누르려는 기제가 자연스럽게 발동된다.
따라서 광고, 구호, 캠페인 등도 일정 수준 이상 반복해서 들으면 오히려 그 내용의 권위가 떨어지고, 그 결과까지 의심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소통을 위한 대화는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중요한 지시나 메시지를 귀가 따갑도록 주입하는 것은 조직 내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첩경이다. 중요한 말일수록 가급적 강한 어조로, 단호하게, 드물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신뢰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 : 칭찬을 아껴라!
서로 신뢰하면 거짓 없는 내용을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최근 연구들을 종합하면 사람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상대에게 신뢰를 보낸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메건 메카티박사는 ‘자아존중감’과 ‘친화성’이 모두 충족되면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속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신뢰가 있다는 의미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고,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또한 ‘친화성’은 타인과 긍정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관계를 지니려는 동기를 뜻한다. 따라
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 결과 자신의 속내를 잘드러내 이후의 갈등을 막고, 나아가 이차적인 자아존 중감과 친화성, 신뢰를 추가적으로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자아존중감이 없는 상태에서 친화성만 높은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처럼 파벌주의나 조직이기주의적 측면을 키우는 집단으로 흘러갈 것이다. 반대로 자아존중감은 큰데 친화성 없는 조직의 사람들은 자신만이 사랑받고 유능해지기 위해 약육강식의 구조와 경쟁을 만들어 낼 것이 뻔하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하다. 타인을 배려(즉 친화성)하는 모습과 행동에 대해 조직은 아낌없이 칭찬(즉 자아존중감)을 해주어야 한다.

신뢰와 전문성을 얻으려면
역사를 보면 ‘신뢰를 잃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그대로 따른 조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다. 그들은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No’가 허락되지 않던 조직,명령의 주입에 철저했던 조직, 배려하는 모습을 나약하다며 오히려 처벌했던 조직이었다. 그 결과는 구성원간에 조금의 솔직함도 나타나지 않았고, 패망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일본군의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군이 자멸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일본 육군은미드웨이 해전에서 자신들의 해군이 전멸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6개월이 지나고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해군이 아닌 자신들의 첩보망을 통해서 말이다. 이후 육군은 해군을, 해군은 공군을, 공군은 육군을 믿지 않았고, 일본군은 서로 견제하고 훼방을 놓으면서 미군에게 연패를 거듭했다.
오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무조건 ‘Yes’가 아닌 건강한 ‘No’가 허용되는 조직이어야 가짜 신뢰를 진짜로 착각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주입식 교육과 지시가 아니라 적절한 흥미가 유발될 때 신뢰가 만들어진다. 협동과 배려에 대해 조직이 적절한 칭찬과 보상을 하면 자아존중감에 기초한 친화성이 싹터 진짜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꼭 기억하자. 상호 간에 솔직하고, 말한 것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 위에서 협력의 거대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신뢰를 만드는 전제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무조건 ‘Yes’가 아닌 건강한 ‘No’, 지겨운 주입이 아닌 흥미 유발, 마지막은 배려에 대한 적절한 칭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