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스토리

‘오!’ <콜럼버스 프로젝트> 참가자 선발 공지를 볼 때마다 속으로 소리를 내곤 했다. 공지를 읽다 보면 ‘새로운’이라거나 ‘도전’ 같은 신나는 이미지가 떠올라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 소리가 수그러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콜럼버스처럼 딱히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공지사항을 볼 때는 사뭇 달랐다.

잘해서가 아니라 더 잘 알고 싶어서
‘오!’ 2018년 새롭게 올라온 <콜럼버스 프로젝트> 공지사항을 보며 새 호들갑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고, 호들갑을 떠나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무언가를 잘해서 할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업무를 하다 보니 도저히 잘 모르겠다 싶어서, 그래서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싶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시작은 2017년도 말부터 치약, 칫솔 등 구강 관련 제품의 소비자 연구로 담당 업무가 바뀌면서부터다. 부모님께 치아관리를 위탁했던 시절을 제하고서라도 이십여 년이 훨씬 넘도록 써 온 치약과 칫솔이지만, 별생각 없이 치약과 칫솔을 써왔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모르겠는데, 하물며 소비자들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를 짐작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것 같았다. 그래서 진도를 앞서나갈 필요가 생겼다.
회사에 다닌 지 3년이 다 되어 갔지만, 다시 처음 입사했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치약과 칫솔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해 볼 시간을 갖고 싶었다.

리뷰 동영상 제작과 몇 가지 규칙
그래서 생각해낸 게 치약과 칫솔을 써 보고 리뷰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가장 좋은 공부는 가르쳐 보는 것이다’는 말이 맞다면, 치약과 칫솔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것 역시 이들 제품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생각은 막연하게 여러 제품을 써 보고, 사용 경험을 동영상에 담으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 제약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회사 제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우리회사의 제품만을 대상으로 정했고, 내가 등장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리뷰 내용과 제품 자체가 부각되는 것이 좋겠다는 명목상의 이유가 하나 있었고, 쑥스럽기도 하고 영상미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하나 있었다.
그렇게 3개월간 회사에서 지원한 예산으로 ‘히말라야 핑크솔트 담 은치약’과 구강청결제, ‘리치 컬러 팔레트 칫솔’, ‘리치 와이드 칫솔’ 3종을 살펴보고 리뷰 동영상을 제작하였다.

아하! 이래서 사람들이 안 했구나
동영상을 제작하고 보니 치약과 칫솔 리뷰에 왜 사용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닦아 보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겠는데, 그런 차이를 언어로 표현하거나 영상으로 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특히 칫솔이 더 어려웠다. 가령 같은 미세모 칫솔이라고 하더라도 ‘미세모여서 부드러워요’라든지 ‘초미세모라서 더 부드러워요’라든지 ‘초극세모라서 더욱 많이 매우 부드러워요’ 같은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사용감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치약의 경우도 비슷했다. 안 써 본 사람에게 향을, 거품을, 헹군 후의 잔여감을 언어로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었다.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가 도래했고, 누구나 동영상을 손쉽게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영상을 누군가 보게 만드는 것까지 쉬운 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내가 제작한 영상을 사람들에게 닿게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만 같았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
소비자 조사를 하다 보면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알아내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소비자의 선택이나 행동에 대해 그 이유를 묻고, 그에 답하기 시작하면 소비자의 마음은 언어라는 불투명 용기에 담기게 된다. 그러면 어쩐지 잘 전달받기는 한 거 같은데 내용물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2017년 말, 구강 제품 소비자 연구를 맡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결국 소비자의 언어를 투명하게 만들 틀을 제시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도 깊이 고민하며 사용해본 적이 없는 치약과 칫솔이기에, 소비자 경험과 생각이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는 틀을 제시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콜럼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그런 틀을 마련하는 방법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제품을, 제품 사용 경험을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이해해 본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물으면 소비자의 생각이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지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