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스토리

<콜럼버스 프로젝트> 주제를 식용꽃으로 삼은 이유는 추억 때문입니다. 유년 시절 저의 감기약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유채꽃 꿀차’였거든요. 고향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지천으로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감기 걸린 저를 위해 유채꽃을 따다 곱게 빻고, 꿀과 버무려 특효차로 만들어 주셨거든요. 제가 지금 음료 마케팅 일을 하고, 식용꽃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할머니와의 좋은 추억 때문인 듯합니다.

플라워스쿨부터 믹솔로지까지

 스터디와 시장조사를 시작해 보니 식용꽃이 최근의 비건(Vegan)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건은 동물성 식사는 물론 동물로부터 얻은 원료를 사용한 제품도 멀리하는 식습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비건 제품은 건강하고 윤리적이며, 품질도 좋다는 인식이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퍼지면서 관련 시장은 점차 커지는 추세입니다.

이에 발맞춰 샐러드 전문점 수가 늘고 있고, 이제 카페에서도 꽃차 메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와 꽃이 지닌 소재 및 성분으로서의 매력을 잘 푼다면 음료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에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장조사와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식용꽃을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상적인 지식이었죠. 그래서 저는 플라워스쿨에 등록해 꽃과 화훼시장에 대해 체험하고, 꽃차자격증 과정 수업에도 참여해 각각의 꽃이 지닌 맛과 향, 효능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또 꽃을 원료로 음료를 만드는 믹솔로지(Mixology) 수업도 병행하며 꽃과 차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청태전(靑苔田), 1000년 전통의 우리 차

국내 시장조사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청태전(靑苔田)’이라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차를 알게 된 것입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청태전은 국내 최적의 차 재배지인 전남 장흥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전국 19곳에 다소(茶所차를 공납하던 곳)를 두었는데 그 중 13개 소가 장흥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장흥은 예로부터 차의 주요 생산지입니다. 특히 장흥의 보림사는 신라시대 승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심고, 민가에 보급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렇듯 청태전은 문화재적, 역사적 가치가 풍부합니다. 하지만 그간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유산을 되살린다는 스토리를 가미해 음료 제품을 만들고, 한국 전통차를 활용한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든다면 해외시장에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미국 ‘hint’에서 얻은 힌트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고, 건강한 음식에 대한 니즈가 높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콘셉트의 건강 음료 및 제품들을 다루는 스타트업이 샌프란시스코에 많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힌트(hint)’라는 인퓨즈드 워터(Infused Water)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말 직접 미국을 찾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본거지로 둔 스타트업 HintWater는 생수에 꽃이나 과일을 넣었다 뺀 것 같은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선보여 주목받은 곳입니다. 하지만 막상 샌프란시스코의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보니 제품 판매가 기대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거대한 경쟁자들의 촘촘한 유통력을 이기기에는 시기상조였던 걸까요?

하지만 고무적이었던 점은 이 제품이 온라인을 통해 꾸준히 정기배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구매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제품의 콘셉트(친환경, 건강)를 SNS에 홍보하고, 판촉물을 적극적으로 구매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과정을 면밀히 살핀 저는 유통사에 편중된 국내 음료의 유통 환경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주목하는 차세대 원료

샌프란시스코의 푸드테크(Food-Tech)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핫한 원료는 카나비디올(Cannabidiol · CBD)이라는 대마초 추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마는 크게 마리화나(Marijuana)와 헴프(Hemp)로 구분이 되는데 우리가 흔히 ‘마약’이라 부르는 대마는 마리화나입니다. 반면 헴프는 중독성이 없고, 불안과 우울증을 줄이며, 릴렉싱 효과가 있어 음료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지난해 1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헴프(Hemp), 즉 기호용(Recreational)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기호용 대마는 앞으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손꼽힙니다. 주정부 보고서에도 해당 산업은 향후 5조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입니다. 현재 미국의 여러 제조사와 스타트업이 CBD의 상용화와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CBD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잘 알기 때문이겠죠.

식용꽃을 배우고 기호용 마리화나를 접한 3개월의 <콜럼버스 프로젝트> 기간은 참으로 향기로웠고, 릴렉싱한 시간이었습니다. 현업으로 돌아온 저는 이제 한층 더 성숙한 자세로 다시 귀한 원료를 모으고, 정성을 담아 최고의 제품으로 고객과 소통하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제 할머니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