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한 이야기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집은 개인의 취향, 관심 그리고 역사와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가족의 박물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집을 통해 알지 못했던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우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줍니다. 집 안에 들이는 물건 하나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쓰임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힐링의 공간이자 가족의 특별한 놀이터로서 집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3명의 셀럽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집에 관한 다양한 팁이 담겨 있습니다.

 

 

 

집, 유쾌한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곳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희진 오랜 시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많은 상업적 공간을 디자인하고 잡지와 브랜드 광고를 통해 아름다운 공간 비주얼을 소개하고 있는 트위니 심희진 대표의 집을 찾았다. 취미인 베이킹을 위해 거실을 작업실로 꾸미고 작은 소품 하나에도 취향을 담은 것은 물론이고 효율적인 동선이 돋보이는 인테리어 고수의 내공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이 집에서는 어느 정도 거주하셨나요. 이사는 올 2월에 왔어요. 일을줄이면서 집을 사무실처럼 사용하려고 기존 집과 사무실 두 곳의 이삿짐을 추려서 오느라 사실 몹시 힘들었어요. 꼭 필요한 가구와 소품들은 가지고 오고 나머지는 모두 정리했어요. 가구를 먼저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에 맞춤 장이나 선반을 짜 넣어 완성하니 공간의 균형을 잡기도 어렵지 않았고요.

 

 

최근 이사하면서 거실 전체를 부엌으로 리노베이션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제빵·제과에 푹 빠져 있어요. 처음에는 빵만들기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2년 전 나카무라 아카데미의 제과·제빵 과정을 수료했고 이후에는 12평 베이킹 작업실을 만들기도 했어요. 주말에는 거의 작업실에만 있을 정도로 심취했는데, 빵이라는 게 숙성과 발효 과정이 있어 이걸 지켜봐야 해서 아예 집 안에 작업실을 들였죠. 마침 집 이사 계획이 있어 과감하게 거실을 베이킹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몇 년 정도 브랜드의 공간을 꾸미는 리테일 디자인 일만 했어요. 한 번 시작하면 4~5개월 정도는 정말 치열하게 일을 했던지라 약간의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고요. 그래서 일을 줄이고 좋아하는 것에 보다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희 가족 모두가 집순이 집돌이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도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니 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처음에는 거실 일부만 베이킹 작업 공간으로 고치려고 한쪽에 가벽을 세웠는데 남편이 지나가다 도면을 보고 본인은 회사에 가고 애들도 컸으니 굳이 필요하다면 AV룸을 따로 만들고 거실은 마음껏 쓰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거실을 베이킹 공간으로 만들었을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홈 베이커들이 실력이 늘지 못하는 이유는 재료와 도구가 늘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타이밍이 중요한 제과·제빵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재료와 도구를 찾으면 안 되거든요. 오븐과 발효기, 반죽기 등 기계를 사용하는 동선에 맞춰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살림하는 주방과 베이킹하는 주방을 나누는 것이었어요. 기존 주방과 거실 사이에 가벽을 세우고 거실 쪽 가벽에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수납장을 배치해 빵 반죽을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작업대, 포장 테이블, 레시피 북을 볼 수 있는 책상을 배치했어요. 그리고 작업실에 있던 폭이 좁고 긴 테이블을 거실 창가 쪽에 배치해 만든 빵과 케이크 그리고 갓 내린 커피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죠.

 

 

공간의 동선과 효율성 외에도 인테리어에도 내공이 느껴져요. 이사하면서 새로운 가구나 소품은 거의 구입하지 않았어요. 창가 앞의 빈티지 테이블도 제가 소유한 기간만 12년 정도 돼요. 벽면의 스트링 선반도 오래된 것으로 이사를 갈 때마다 새롭게 조합해 사용하고요. 그렇다고 애착이 가는 가구와 소품만을 고집하면 고루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도태되는 느낌도 있어요. 평소 내추럴 무드를 좋아하는데 여기에 요즘 트렌드를 약간 믹싱하려고 해요. 그래서 미드 센추리나 노르딕 풍 소품이나 가구를 아주 신중하게 한두 가지 포인트를 주었어요. 가구나 소품을 구입할 때 그 제품만을 보고 구입하지는 않아요. 공간의 룩에 맞춰서 브랜드보다는 가장 어울 리는 것으로 선택합니다. 지금 이사 온 집이 50평대인데 아이들이 모두 분가하고 나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 어떨까 해요. 남편과도 ‘우리 둘만 살 때 이 집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라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어요. 그래서 그런지 가구도 소품도 혼자만 너무 도드라지지 않고 클래식한 것들이 더 끌려요.

 

대표님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요. 가족이 각자의 라이프로 소란스러워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마다 인생의 소리로 소란스러워야 한다고나 할까요. 저는 빵을 굽느라 남편은 무언가를 조립하느라 늘 소란스럽지요.(웃음) 큰아이는 취미가 요리예요. 막내는 별말은 없는데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방 안에서 소란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을까요. 그 아름다운 소란스러움을 위해 인테리어적인 요소와 동선이 적절히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집, 유쾌한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곳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번잡한 서울에서도 유독 조용한 동네, 연희동. 그곳에 대기자가 매달 150명이 될 만큼 인기 절정의 요리교실 ‘구르메레브쿠헨’이 있다. 이곳을 이끌어가는 나카가와 히데코 선생은 3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이다. ‘인생을 즐겁게!’라는 모토로 일과 터전이 어우러진 오래된 양옥집은 집주인을 닮아 유쾌한 생기로 가득하다.

 

 

지금 살고 계신 집의 역사가 궁금해요. 결혼 직후에는 아파트에서 약 10년간 살았어요.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약 15년 정도 되었고요. 아파트에서 연희동 이층집으로 이사한 건 제 인생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요리교실이 아니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수 많은 인연을 만났기 때문이죠. 처음 이사 와서 약 6년 정도는 세입자들이 1층에 살고 있었고 주거공간인 2층에서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아래층 세입자가 젊은 여성이었는데 출판사 편집자로 가끔 와인을 마시며 친해지면서 저의 첫 요리책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첫 책 출간을 계기로 요리교실도 더욱 활기를 띠었고, 그 이후 다양한 책을 출간하게 되었지요. 이 집에서 요리연구가로서 더욱더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혹시 집을 다시 짓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심각하게 고민하긴했어요. 리모델링을 하긴 했지만 1974년도에 지어져 50년 가까이 된 집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이 길어지니 공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집을 허물어 마당을 넓게 트고 아담하게 다시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이제 몇 남지 않은 1970년대 한국의 양옥집의 구조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집은 5~6년 전 내부만 리모델링하고 외부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어요. 남동향 집으로 채광도 좋고 특히 남편의 서재에서 바라보면 남산타워는 물론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이 정말 아름다워요.

 

 

집 안의 소품이나 가구들이 예사롭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인테리어 잡지나 방 도면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방의 배치를 바꿔보는 게 취미였죠. 따로 배운 적은 없어도 꾸준히 인테리어 관련 잡지를 보며 많이 익힌 만큼 방을 보면 어떻게 꾸며야 할지 대충 감이 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인테리어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굳이 콘셉트를 잡아놓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느낌이 가는 대로 꾸미려고 해요. 그러다 가끔 실수하는 게 그림이든 가구든 예뻐서 사놓고 막상 놓을 데가 없어 곤란하다는 것이었죠. 그럴때면 머릿속으로 사부작사부작 도면을 그리고 요리조리 배치를 해봐요.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번에 뚝딱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집을 구현해내기는 어려워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하나씩 바꿔나가면서 상상하던 집의 모습으로 완성해가는 것도 집 꾸미기의 묘미가 아닐까요. 보시면 알겠지만 소품이나 가구는 손때 묻은 앤티크에 애착이 많아요.

 

집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 모토가 ‘즐겁게 살자’입니다. 요리 수업도 즐거워야 하고 집에 있는 시간도 즐거워야 하죠. 저는 일은 물론 모든 일상이 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집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거워질 수밖에 없어요. 연희동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저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바비큐를 원할 땐 언제든 즐길 수도 있고, 날 좋을 때는 마당에 앉아 커피나 와인 한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말 그대로 집이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 하게 된 것이지요. 아파트에 살 때는 미처 누리지 못했던 많은 일이 가능해졌어요.

 

 

 

지극히 사적여야 하는 공간, 집

 

덴스크 대표 김효진 한센&선, 프레데르시아, DK3 등 북유럽 정신을 계승한 브랜드의 제품부터 직접 수집한 빈티지 가구와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 작가들과의 컬래버 작품까지… 덴스크에 가면 이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다. 반면 덴스크의 김효진 대표의 집은 구조나 인테리어가 아닌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거실과 침실이에요. 혼자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고 또 손님들과 소소한 모임을 즐기는 장소에요. 거실이 놀이터라면 침실은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죠. 업무상으로는 좌뇌를 많이 사용한다면 집에 들어오면 우뇌를 사용해 정신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죠. 그림이나 빈티지 가구, 공예품, 음악, 와인 등은 우뇌를 자극시켜주는 힐링템이죠.

 

 

그림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사춘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경영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을 교양과목으로 찾아 들을 만큼 미술사에 관심이 있었고요. 대학 졸업 후에는 미술사를 공부하려다 방향을 바꿔 장식예술사라는 분야를 배우긴 했지만요. 컬렉션을 하게 된 건 덴스크를 오픈하고 나서이니 15년 정도 되었어요. 돈이 있을 때마다 모으기 시작했는데 투자 목적보다는 제 마음을 움직이는 것 위주로 구입했어요. 그림이나 공예품을 구입할 때는 작가들의 철학이 담겨 있는지 살피는 편이에요.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들의 작품은 덴스크에서 판매하고 1년에 한두 번은 전시회도 꼭 열어요.

 

집을 인테리어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니 지금 집은 5~6번째 집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리모델링은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 소유의 집이 아닌 경우도 있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구와 패브릭, 작품 이 세 가지면 집에서 보기 싫은 부분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예전엔 집이라는 공간으로 ‘나란 사람은 이런 존재야’라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어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대변해주는 공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집은 지극히 사적여야 하고 또 취향이 묻어나야 하며 자신이 어떤 라이프를 사는지 고려해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에 소파가 없어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해서 소파 대신 10명 정도는 거뜬히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을 선택했어요.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동선이나 인테리어적 요소뿐만 아니라 집에서 무얼 어떻게 즐길 건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규격화되어 있는 것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 정말 나를 위한 공간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고려해 인테리어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구나 소품을 집 안에 들일 때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구입하나요. 삶에는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 덴스크를 오픈하고 10년 정도는 정말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의 30대의 삶은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5년 전부터는 회사의 규모도 많이 줄이고 건강을 비롯해 나를 돌보는 시간에 투자를 좀 더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 다이어트도 했고 물건도 마찬가지로 비워내고 채울 때는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어요. 가구나 소품, 작품을 살 때도 지속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요. 버리거나 처분하는 데 드는 시간과 환경문제를 고려한 가치소비를 하려고 노력해요.

 

 

저작권자ⓒ ㈜조선뉴스프레스 여성조선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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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강부연 기자 사진 이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