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로 체감하는 계절과 상관없이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계절은 그리 중요치 않다. 이미 ‘패션=시즌리스’로 인식하며 여름의 옷장에서 다음 계절의 옷이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런 변화의 틈에서 확연하게 존재감을 발현하는 건 니트웨어가 아닐까. ‘가을, 겨울의 옷’ ‘터틀넥’ 등 그저 따뜻한, 멋과는 상관없는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던 니트가 최근 들어서는 계절을 불문하고 많은 이가 즐기는 것은 물론 스타일리시하기 위해 선택하는 소재로 사랑받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단정한 모범생 룩의 정석 같던 ‘두터운 니트 톱’이나 한겨울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터틀넥’ 중심이던 니트 아이템이 스커트, 바지, 원피스, 코트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니트의 원사(原絲)도 울이나 코튼뿐 아니라 고급 소재로 손꼽히는 캐시미어까지 사용되는 추세. 게다가 리넨이나 코튼 등 자연적인 소재에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비스코스 등의 합성 섬유를 혼방해 만든 니트는 땀이나 열에도 강하기 때문에 여름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니트는 직조 방식이나 원사에 따라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그래서인지 여느 카테고리에 비해 니트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브랜드가 많은 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니트’ 소재에 집중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다. 대표적으로 디자이너 김정은이 이끄는 ‘리플레인’, 디자이너 정수미의 ‘수미수미’, 최원의 ‘원초이’ 등이 있다. 앞의 두 명은 시스템, 타임 등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패션 그룹 한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소재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이들인 것. 이 외에도 ‘마레디마리’는 오랜 세월 니트 디자인에 전념해온 디자이너 유명해가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 니트 전문 브랜드이고, 남성 니트웨어를 전면에 내세운 ‘제이리움’은 니트 제조 업체를 운영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 조오륜이 만든 브랜드다. 저마다 니트에 대한 오랜 경험과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니트의 가능성을 확신하며 전문 브랜드를 론칭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하나같이 빠진 니트의 매력은 무엇일까. 리플레인의 디자이너 김정은은 ‘무한한 표현의 영역’을 꼽았다. “다른 소재는 이미 있는 원단을 재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니트는 훨씬 기본으로 돌아가 원사에서부터 출발할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심플하게도 복잡하게도 직조를 할 수 있고, 그과정에서 컬러를 믹스하거나 패턴을 넣을 수도 있죠. 디자이너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원단을 만들 수 있기에 니트라는 소재는 흥미로울 수밖에없어요.” 수미수미의 디자이너 정수미 역시 자신만의 원단을 창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니트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됐다고 말한다. “매 시즌 수미수미에서 새롭게 내놓는 멀티 스트라이프나 컬러 블록, 자카르 패턴은 어디에도 없는 컬러와 디자인이에요. 브랜드만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주죠.”

이러한 디자이너의 감성을 담은 덕분에 기성 브랜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디자인과 소재, 다채로운 색감의 니트 아이템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존에는 뜨개 형태의 니트가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여름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재질의 얇은 니트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직조 방식을 이어가되 두 가지 색으로 자연스러운 컬러 블록을 표현한 것, 치마나 팬츠를 부하거나 무겁지 않게 만들어 흘러내리지 않고 가볍게 입을 수 있는 것 등 니트를 즐기는 재미를 더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디자이너의 고민과 통찰은 질 높은 결과물로 탄생되곤 하는데, 단순히 니트뿐 아니라 실크, 저지 등 니트 소재와 잘 어울리는 느낌의 아이템을 확장시키며 브랜드만의 고유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니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든 ‘그들만의 스타일 세계’랄까.

최근 들어서는 니트의 수많은 소재 중 캐시미어에 집중한 브랜드도 많아졌다.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데다가 특유의 희소성으로 고급 소재로 손꼽히는 캐시미어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 한섬의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더캐시미어’, 몽골산 캐시미어로 특화한 ‘르캐시미어’, 얇고 가벼운 라이트 캐시미어로 스카프와 머플러만을 다루는 ‘말메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브랜드는 캐시미어 함유량이나 원산지 등에서 질적으로 차별화를 두며 승부를 건다. 전 에르메스 수장이자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는 니트를 두고 “부드러움과 동시에 우아함을 전달하는 특별한 소재”라고 말했다. 니트는 움직임에 따라 신축성 있게 잘 늘어나고,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니, 흔히 말하는 원마일 웨어 혹은 라운지 웨어로도 그 기능을 톡톡히 한다. 많은 이가 꼽는 니트의 매력 또한 여기에서 나온다. 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웨어러블 럭셔리’가 가능하고, 평상시에 입는 옷처럼 보이는데 거기에 진주목걸이를 하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바로 포멀한 룩이 되니 그 자체가 ‘에포크 시크’를 실현시켜주는 소재다. 다양한 컬러와 서로 다른 직조 방식으로 생기는 볼륨감의 차이, 게다가 다른 소재와의 믹스 매치 등 전천후 스타일링을 시도할 수 있기도. 수많은 디자이너가 선택한 니트의 매력 그대로 세련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이 계절엔 니트를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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