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속속 사회로 진출하면서 요즘 여러 기업이 세대 간 소통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인간은 유사 이래 언제나 세대 간 갈등을 겪어 왔다. 세대 간 단절과 불통은 상당 부분 ‘관계’에서 비롯된다. 세대 간에 제대로 소통하려면 나와 다른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관계주의 성격이 짙은 한국 문화에서는 특히 더 중요하다.

그림을 보자. 아래쪽에 판다와 바나나가 있다. 이 둘 중 하나를 위쪽 원숭이와 묶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묶겠는가?
아마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겠다고 답할 것이다. 이는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오는 답이다. 다른 국가나문화에서는 주로 판다와 원숭이를 선택한다. 판다와 원숭이는 동물이고, 바나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묶는 걸까? 원숭이와 바나나 사이에는 일종의 ‘관계’가 있어서다. 이렇게 묶는 현상은 세대 간 차이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은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게 쓴다. 자기소개 대신 자기 관계를 소개하는 데 더 치중한다. 한국인 자기소개서의 전형적인 시작은 이렇다. “저는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진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가족 ’관계’를 먼저 자세히 언급한 뒤, “중학교 시절 학급 반장 2회,고등학교 시절 전교 부회장… 대학교 때는 OO 동아리 회장…” 이러한 내용은 모두 ‘나’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나의 역할이나 위치’에 대한 소개다. 한국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아를 설정하고, 그 자아에 기초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한국인이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
의 연구에서 관계주의의 강도는 세대 간 차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것일까?

1인칭 대명사는 말하는 사람, 즉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품사다. 그런데 1인칭 대명사에는 단수 ‘나’와 복수 ‘우리’ 두 종류가 있다. 즉, 자신을 나타내는 개념이 두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자아가 생각과 행동에 커다란 차이들을 만들어 낸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Wendi Gardner 교수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녀의 연구진은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글을 읽게 했다. 내용은 완전히 같고, 인칭대명사만 다르다. 한 그룹은 모든 인칭대명사가 단수인 ‘나(I)’, 다른 그룹은 모두 ‘우리(We)’다. 이 작은 차이가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었다.
 

‘나’가 주인공인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행복, 미래 등 창조나 성취와 연관된 것들을 대부분 답했다. 반면 ‘우리’를 읽은 사람들은 안전, 평화, 혹은 치밀함과 예방 등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회나 조직의 구성원들을 각각의 ‘나’로 구분해야 할 때와 하나의 ‘우리’로 묶을 때가 각기 다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는 데 더 적합한 자아개념이며, 기발한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일을 시작할 때 더 어울린다. 따라서 이런 일을 할 때는 자아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지원되어야 한다. 반면 ‘우리’라는 개념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나 긴박하게 무엇을 예방하는 것에 더 적합하다. 이런 경우에는 구성원들을 한자리에 모아협동을 강조해야 한다.
‘나’와 ‘우리’에 각각 적합한 생각과 행동의 종류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만 일하는 조직들일수록 세대 갈등이나 불통이 불거지는 경우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아주 명확하게 지닌 경우조차도 1인칭 단수 대명사인 ‘나’를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내세우면 무례하거나 거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다.

우리는 왜 우리에 집착하는가?
더욱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우리’라는 말을 유난히 사랑하고, 많이 쓰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는 표현이 들어갈 자리에 ‘우리’를 사용해 문법적으로 완전히 틀린 표현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심지어 혼자 사는 사람도 자기 집을 우리 집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빠’ 대신 ‘내 아빠’라고 표현하면 무례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우리에 포함시켜 희석하는 겸손을 보인다.실제로 한국의 조직문화는 ‘나’보다는 ‘우리’를 유난히 강조한다. 개인기보다는 팀워크가, 개성보다는 협동이 더 중요한 가치다. 겸손, 팀워크, 협동 등은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 중요한 요인들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몰개성은 물론이고, 창조적인 의견이 나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가 고착된다면 조직이 지향하는 창조와 혁신과는 필연적으로 불일치가 일어난다.우리 사회, 기업, 나라는 긴급한 일이나 무언가를 예방하는 일은 효율적으로 잘한다. ‘우리’의 관점이 잘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은 잘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우리’ 때문이다. ‘나’보다 ‘우리’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능력이나 취향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간과된 결과다. 그렇다면 관계주의인 ‘우리’는 ‘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90년대생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소통의 시작은 ‘관계’를 인정하는 것
자녀들에게 부모에 대한 불만 사항을 물으면 보통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을 때’라고 답한다. 특히 부모와 가장 큰 단절감을 느끼는 경우 중 하나는 부모가 전후 관계도 잘 모르면서 자신의 친구를 비하하거나 심지어는 만나지 말라고 막는 경우다.
부모와 극단적 갈등을 겪는 자녀를 상담하는 전문가들이 갈등의 원인을 계속해서 찾아 들어가 봤더니 그 출발점 중 상당수는 이랬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통화 도중에 부모가 나타나 전화를 낚아채 ‘우리 아이와 놀지 말고, 앞으로는 만나지도 말라’고 호통을 치며 전화를 끊는 경우다.
자녀들이 이러한 기억을 오래 전부터 큰 상처로 가지게 되면, 이후 수많은 갈등과 오해가 생기는 도화선이 된다. 부모-자식 갈등의 대표적인 단초다. 즉, 자녀가 자신의 동년배들과 가지는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를 부모가 제한하고 인정하지 않을 때, 자녀는 가장 큰 불만을 부모와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가지게 된다.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도 결국 마찬가지다. 상사가 부하의 사회적 관계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으면서 상사 자신에게만 묶어두려고 할 때, 부하는 가장 큰 불통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나’라는 개념이 활발해지면 ‘무언가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무게가 더해진다.
반면, ‘우리’라는 개념은 ‘예방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나’와 ‘우리’가 필요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

소통에는 ‘간접통로’가 있다
부모와 자녀, 상사와 부하 등 이미 그 자체로서 상당 부분 수직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지나치게 수평적으로 만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부모나 상사로서 당연히 가지고 행사해야 하는 권위나 지도력 자체가 무너지니 말이다. 세대 간의 직접 소통은 그만큼 어렵다.
그러니 소통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관계주의인 한국 사회에서는 70년대생이든, 90년대생이든, 2020년생이든 항상 소통의 간접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 통로를 보려고 하지도 않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 간접통로는 나와는 다른 세대 사람들이 그들 내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수평적 관계를 내가 인정해 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해 보자. 다 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노는걸 좋아하겠는가, 아니면 아이가 친구들과 만나는 걸 흔쾌히 허락해 주는 걸 더 좋아하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아이들이 부모와 짧지만 큰 소통감을 느낄 때가 바로 자기의 수평적 관계를 무시하지 않고, 심지어는 배려해 주는 순간이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선배가 자신의 동년배적 관계들에 대해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 이분이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관계주의의 소통은 직접 소통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계와 소통하는 것이다.

꼰대가 될 것인가, 어른이 될 것인가?
그런데 90년대생들의 관계는 주로 어디에 있는가? 선배 세대처럼 실존하는 관계에만 있지 않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들을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포노사피엔스는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포노사피엔스라는 말 안에 숨어있다. 그들의 수많은 관계가 네트워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결국 그것이 우리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안의 관계 역시 그들에게는 중요한 관계다. 그리고 그 관계에 의한 자아도 일정 부분 그곳에 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와 공통점이다.
그걸 인정해야만 우린 그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러니 역으로,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어떤 관계를 어느 곳에서 맺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고, 이를 하나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소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거부하면 결국 호모사피엔스들이 30만 년 내내 후배 세대로부터 들었던 ‘꼰대’라는 말을 피할 수 없다.

직접 소통이 소통의 전부가 아니다. 나와 다른 세대가 소통하는 출발점은 그들 세대의 동질성을 인정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소통의 간접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