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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작성일 2022.07.18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

 

2년여 만에 찾아온 엔데믹 여름휴가철, 눌러왔던 여행 욕구를 발산할 때! 열린 하늘길에서 어디든 떠나고 싶다.

 

 

남프랑스 여행의 추억

12년 전의 나에게 고맙다. 남프랑스를 여행해줘서.

 

남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얼마 전 이야기면 좋겠지만 무 려 12년 전 일이다. 30대 초반이던 나는 7년 근속 끝에 주 어진 안식년 휴가만큼은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좋은 선물 이 되길 바랐다. 나는 예상했던 것 같다. 12년 후의 내가, 어느덧 찾아온 노안으로 약간 울적한 기분을 느끼는 와중 에 먼지 덮인 추억의 상자에서 남프랑스 여행 기록이 담긴 지퍼 백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으리라는 걸. 하지만 확신은 없었나 보다. 여행 기록을 부지런히 적다 말았다. 이해할 수 있다. 파리에서부터 시작해 남프랑스의 거의 모든 도시 와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찍고 파리로 돌아오는 빡빡한 여행 일정을 감당하기에 나는 과로와 스트레스에 지쳐 있 던 아픈 청춘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많던 사진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낡은 중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당시 나의 썸남 이 골라주었던 펜탁스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 어디쯤 에 분명히 존재할 거라 믿는다. 복원할 수 없고 다시 볼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게다가 여행하며 모은 소소한 보물들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그때의 기억 을 하나하나 꺼내주니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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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자랑을 조금 해보려 한다. 2010년, 나는 파리 에 살던 친구와 함께 차를 빌렸고 내 생애 가장 많은 도시 를 가장 오랜 기간 여행했다. 어디에서부터 자랑해야 할 까? 여행 첫날, 파리 15번가에 위치한 ‘Thtre des champelysees’ 에서 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의 감동부터 이 야기할까? 보르도의 어느 멋진 샤토에서 와이너리를 견 에디터 김진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화려한 휴가 2년여 만에 찾아온 엔데믹 여름휴가철, 눌러왔던 여행 욕구를 발산할 때! 열린 하늘길에서 어디든 떠나고 싶다. 학했던 날부터 떠올려볼까? 보르도 남서쪽에 있는 유 럽 최대의 모래언덕 ‘뒨 뒤 필라(Dune du Pilat)’는 마 치 다른 행성에 온 듯 신비로운 풍광에 압도되는 경험 을 안겨주었는데, 그날의 기억만 한 바닥 펼쳐놓아도 될까? 하지만 알비의 툴루즈 로테테크 미술관도 꼭 가 보라고 얘기하고 싶고, 중세도시의 모습이 경이롭게 보존된 아비뇽, 샤갈과 마티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 는 아름다운 휴양지 니스와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칸 의 해변도 잊을 수 없는데 어쩐다. 니체가 머물며 <차 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던 아름다운 언덕 위의 마을 에즈에서 내려다본 해변 풍경도 소중했다. 세잔의 고향이기도 한 엑상프로방스의 미라보 거리와 성 소뵈르 대성당, 반 고흐가 머물며 200여 편의 작품 을 그린 도시 아를, 수제 비누 천국인 사랑스러운 마을 망통 거리에 늘 가득했던 향기도 기억한다. 마치 수상 소감처럼 끝도 없이 읊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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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면 누구나 자랑하고 싶어질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가 남프랑스에 머물며 영감을 얻고 작품을 남긴 이유를 매 순간 공감할 수 있다. 그 들도 어쩌면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언젠간 나의 단짝 과 다시 남프랑스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남프랑스를 여행하며 자주 봤던 흰머리에 백팩, 운동화가 잘 어울 렸던 노부부들이 생각난다. 먼지 덮인 추억의 상자를 꺼내보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는 우리, 같이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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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이 남긴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

 

여행을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함께 했던 사람이 다. 옆에 있는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감정을 교류 했는지에 따라 좋은 여행지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떠올리 고 싶지 않은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22살 여름, 몸 크기에 버금가는 배낭을 둘러메고 남아메리 카 대륙으로 떠났다. 나 홀로 백패커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안고 떠났으나 생전 처음 만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 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에서 느낀 외로움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구미가 당 기지 않았고, 유명 관광지에서도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페루까지 꾸역꾸 역 국경을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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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을 마주하기도 힘들었던 약 2개월의 시간. 마추픽추가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덕분인지 페루에 닿자마자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엄청난 위 안이 됐다.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페루 쿠스코의 한 민박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0명 남짓의 한국인 여행자들과 말문을 텄다.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먼 곳으로 여행을 온 거냐는 숱한 질문 속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 였다. 그때 그들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지금이야 22살 이든 25살이든 다 똑같이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엔 그들이 어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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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만나면서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남미 여행은 보통 페루 이후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순으로 국 경을 넘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마지막인 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에도 종종 다른 국가, 다른 지역에서 다 시 만났다. 각자의 루트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여행을 즐 겼고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최선을 다해 같이 있으려고 했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 등 여행지 버킷 리스트에 꼽 히는 곳도 이들과 함께 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광지의 절경보다 숙소에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 먹었던 그 시간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축구와 군대 이야기만큼 듣기 싫은 게 여행담이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든 여행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 끼리 만났을 땐 예외다. 언제든 묶어뒀던 보따리를 풀어내 그땐 그랬고, 저땐 저랬다는 말을 이어간다. 같은 이야기 를 2만 4,621번 정도 나눈 거 같은데 항상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진다. 22살이었던 나는 어느덧 당시 나이 서열 2 위였던 칠레 메이트 오빠의 나이가 됐다. 그동안 몇몇은 결 혼했고, 몇몇은 지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약 100일간의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을 묻는다면 그때 그 사 람들이다.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고 맺을 수 있었던 귀한 관계다. 그들은 알까? 나는 아직도 그때 먹었던 냄비밥을 떠올리며 간간이 미소 짓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추억을 선물해준 당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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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필리핀에는 파란만장한 나의 어린 시절 추억 한 조각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다. 가족들과 다 같이 처음으로 떠났던 해외여행 지가 바로 필리핀 보라카이였으며, 다시 한번 더 가족끼 리 여행하고 싶을 만큼 즐겁고 좋은 추억만 남아 의미가 깊 다. 사실 나에게 필리핀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학교 프로그 램에 참가해 머물렀던 두 달간의 기억 때문이다. 이때 갔던 곳은 바기오 시티라는 곳인데, 수도인 마닐라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데다 세부, 보라카이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과 도 멀다.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방문했기에 평일에는 어학 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했고, 주말이면 여자 대여섯 명이 뭉쳐 여행을 떠났다. 화려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마치 현지인이 된 것처럼 소박하게 구경을 다녔다. 덕분에 그 어떤 여행보다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보 라카이나 세부, 마닐라와 같이 한국인으로 북적이는 관광 지가 아닌, 현지인이 놀러 가는 스폿을 다니며 가이드북이 나 블로그 등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여행 한다는 묘한 자부심을 느낀 것이다. 버스, 택시와 비슷한 필리핀의 대중교통수단인 지프니와 트라이시클까지 자유 자재로 잡아타고 많이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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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기억은 오래 남기 때문인지 고생했던 여행이 가장 먼 저 떠오른다. 그날은 친구들과 새벽같이 일어나 어학원 근 처의 버스터미널로 가서 목적지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탔다. 현지인 승객도 별로 없이 거의 빈 채로 어느 벌판을 달 리던 버스 속에서 마주한 일출은 우리나라에서 봤던 그 어 떤 일출 장면보다 더 웅장하고 감동적이었다. 시작이 좋다 고 생각한 것도 잠시. 버스에서 내려 다시 지프니로 갈아탔 는데 운전사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한 것이다. 몇 번의 언쟁 끝에 결국 목적지까지 다 같이 하염없이 걸어갔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우리의 목적지는 관광지라기보다는 현지인 이 잠깐 바다를 보러 들르는 곳이었다. 한적했던 그곳에서 가까스로 하루 묵을 곳을 구했는데 벌레가 나와 난리가 났 다. 숙소도 힘겹게 구했는데 식당이라고 제대로 있었겠는 가. 근처 식당이 다 문을 닫은 탓에 재료를 사 와 참치 카나 페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래도 모두 이상하게 맛있다며 웃 었던 기억이 난다. 위험천만했던 순간도 있었다. 나름대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는 날 밤, 지명을 헷갈려 엉뚱 한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다 같이 ‘멘붕’이 왔던 적도 있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어학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 히 돌아올 수 있었다. 온전히 좋은 추억만 남은 곳도 있다. 현지인들이 101개의 섬이라고 불렀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직접 통통배를 타고 섬 사이사이를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 에 울컥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여행했던 열정과 패기는 어 디 가고 지금은 이상하게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무서워졌 다. 어릴 때는 여행하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어느새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문득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이상하게 다시 마 구잡이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다. 더 세상이 무서워 지기 전에 이제는 더 먼 곳으로 발길을 내디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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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이고 싶어라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을 끊었다. 나를 위한 보상이었다. 그 해 여름, 그렇게 체코로 향했다.

 

내가 사는 서울은 빠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이 기다린 다. 그리고 그것을 ‘트렌드’라고 표현한다. 트렌드로 명명된 것들이 주는 피로함이 목 끝까지 찼다. 걷고 싶었고, 걷다가 맘 편히 쉬고 싶었다. 그때 내 앞에 펼 쳐지는 광경에 넋을 잃고도 싶었다. 지금 내게 천국이 있다면, 그곳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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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땅에 닿지 않았던 그 시절, 나는 홀연히 체코로 떠났다. 여유롭게 사는 자들과 뒤섞이고 싶었다. 오래 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체코인들의 미적 감 각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맛있다는 체코 맥주 한 잔 놓고 세월아 네월아 음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괴 테와 베토벤, 카프카가 사랑했던 곳 아닌가!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유 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를교를 배경으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 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카를교는 저녁노을이 질 무렵에 그 아름다 움이 절정에 달한다. 이 아름다운 다리가 과거엔 ‘돌 다리’로 불렸다니 시간의 힘은 이렇게나 대단하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형형색색 건축물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골목 구석구석 들어선 카 페에선 낭만과 여유가 느껴진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 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곳은, 바로 체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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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900년에 걸쳐 완 성된 프라하성의 웅장함과 섬세함, 아름다움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스친다. 내려오는 길 끝에 보이는 아 름다운 성당이 발길을 잡는다. 미사를 드리는 무리에 섞여 기도를 해본다. 여행자들의 기도는 순간에 충실 하다. ‘삶은 여행이고 싶어라.’ 낯선 곳에서 나를 찾는 시간, 누구나 꿈꾸는 여행 아닌가.

 

체코의 외곽 도시, 마리안스케라즈네도 잊을 수 없다. 쇼 팽과 바그너, 브람스, 카프카, 괴테, 처칠이 사랑한 이 마 을. 걷다 보면 위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괴테는 이곳에서 마지막 사랑을 불태웠다. 노년의 괴테는 휴양차 이곳에 왔다가 자신보다 55살이나 어린 17살 소녀 울리케 를 사랑하게 돼 이후 3년간 이 도시를 찾으며 열렬히 구애 한다. 주변의 반대에도 괴테는 “제발 이 성냥 한 개비가 타 는 동안만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하지만 결국 그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전해지는 얘기로는 소녀 도 괴테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소녀의 어머니가 괴테를 짝사랑했다는…). 실연의 아픔으로 괴테는 한 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빛날 명작 < 마리엔바트의 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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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여행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호텔 샤토 므첼리를 경험하고 싶어서다.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 휴양지 1001>의 저자 리사 폴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샤토에서는 17세기 신고전주의적 로맨틱함이 배어 나오며, 위풍당당한 하얀 파사드 뒤로 정교하게 장식한 실내, 그러니까 반짝이 는 샹들리에, 호화로운 패브릭, 길고 구부러진 층계를 자랑 한다.” 샤토의 자태가 상상되는지….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 든 그 이상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샤토 옥상에서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 호텔’에서 보는 하늘이다. 혼란의 그 시절, 체코는 내게 혼란 속의 낭만을 주었다. 죽 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밤하늘이었다.

 

 

저작권자ⓒ ㈜서울문화사 우먼센스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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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