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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작성일 2022.10.21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일상을 잠시 멈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겉부터 속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 1년에 한 번 우리는 ‘건강검진’이라는 이름의 의식에서 다양한 단상을 마주한다

 

 

평범하게, 다정하게

 

건강검진은 남편과 동반으로, 다정하게 받는 편이다.

 

거의 매년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진 병원을 고르 고, 검진 항목을 선택하고, 남편과 일정을 조율해 예약일을 잡고, 택배로 온 건강검진 안내문과 문진표, 검진 준비물을 챙기는 일련의 과정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돌 이켜보면 여행이나 나들이를 준비하듯 내심 즐겁기도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건강검진이 나는 왜 들뜨고 좋았던 걸까? 엄밀히 말하면 건강검진은 전날부터 시작된다. 전날 저녁부 터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그날만큼은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 저녁 식사가 없는 저녁은 낯설다. 늘 분주하게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나면 후딱 지나가는 게 저 녁인데, 금식을 하니 온 우주가 조용한 것 같다. 평소보다 고 요하고 길게 느껴지는 그날 저녁에 우리는 공복인 상태로 나 란히 앉아 문진표를 작성하곤 한다. 질환과 가족력에서 시작 해 운동과 음주 횟수 등 생활 습관 체크부터 우울증과 스트레 스 지수를 체크하는 항목까지. 내 몸과 마음을 차분히 돌아보 는 명상의 시간이나 다름없다. 남편은 단숨에 체크하고 의기 양양한 미소를 띠며 자리를 금방 벗어나지만 말이다.

 

다음 날엔 검진을 받기 위해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지하철 을 탄다. 검진 당일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를 집에 두 고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결혼 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같이 데이트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함께 출근하는 것 같은 기분도 좋다. 검진 센터에 도착하면 남편과 나는 검사 순서에 따라 따로 움직이지만 동선은 자주 겹친다. 남편과 간 간이 얘기를 나누고 남편이 검사를 잘 받고 있는지 신경 쓰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우리는 대망의 수면마취 위내시 경을 끝으로 다소 몽롱하면서도 개운한 상태로 만난다. 그리 고 고대하던 순간을 맞는다. 센터에서 준 식권을 행복하게 받 아 들고 서둘러 밥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죽이나 북엇국 정도 의 소박한 선택지도 행복한, 우리는 공복이니까. 점심을 먹은 뒤에는 근처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먹곤 한다. 지난 건강검 진은 여의도에서 받았는데 우연히 들른 ‘폴앤폴리나’에서 구 입한 버터 브레첼, 허브빵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나이도 잊 은 채 길에 선 채로 다 먹어버렸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남 편은 늘 그렇듯 꾸벅꾸벅 졸았고, 나는 그런 남편을 자게 두 었다. 오전에는 놀았으니 오후에는 일할 거라며 집을 나서고 야 말 사람이니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건강검진일의 풍경이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건강검진은 특별한 쉼이다. 건강을 챙기면서 당당하 게 쉴 수 있는, 쉬어야 하는, 나의 반려자와 함께 몸과 마음의 휴식을 누리는 그런 날. 일주일쯤 뒤에는 한 발짝 더 다가온 노화와 질병, 이별, 죽음의 시간을 엄중하게 예고하는 건강검 진 결과지가 경고장처럼 날아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무 겁내지 않기로 한다. 남편과 손잡고 함께 건강검진을 받고 맛 있는 밥과 디저트를 즐기는 내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또 기다 릴 뿐.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감사함으로 인식을 전환해본 다. 그게 건강에 좋으니까!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아 , 무섭고 서럽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 나는 경건하다.

 

건강검진의 계절이 돌아왔다. 20·30대엔 과음한 다음 날에 도 아무렇지 않게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지만, 이제는 경건해 진 마음으로 ‘그날’에 임한다. 40대의 건강검진은 단순한 문 제가 아니다. 아, 무섭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해온 나는, 연말이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건강검진을 받았더랬다. 젊은 시절엔 그랬다. 건강검진을 해 도 아무런 이상 신호가 없었기에 무언의 의식처럼 그 전날엔 술을 마셨고, 숙취를 안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곤 했다. 그 시절엔 다이내믹하게 변화하는 ‘몸무게’가 건강검진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40대가 됐다. 몸 구석구석의 노화 가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수치로 나타난다. 매년 ‘건강검진 결과지’엔 건강 상태가 구구절절 적힌 글로 빼곡하다. 읽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뭔 소리인진 잘 모르겠지만 결국 늙어간다는 소리다. 추적 검사를 해야 하고, 예의 주시해야 한단다. 아, 무섭고 서럽다.

 

친구들을 만나면 어느새 건강 얘기로 꽃을 피운다. 물론 재 테크, 시술, 연예인 얘기로 더한 꽃을 피우지만 가장 진지한 시간은 언제나 건강 얘기를 할 때다. 대체로 “누가 아프대”로 시작되곤 하는데, 그게 누구든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강관리를 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고기를 직 화로 구워 먹으며 “역시 직화야!” 하며 감탄하고, 인스턴 트 음식을 먹으며 “요즘은 편의점 음식도 기가 막혀!” 하 며 뿌듯해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면 “역시 MSG 야!” 하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이가 들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모두 똑같은 말을 한다. “건강이 최고야.” 그래, 건강이 최고다. 그걸 알면 서도 돈 몇 푼에 나를 돌보지 않고 산다. ‘그게 무슨 소용 인가’ 하지만 며칠 뒤엔 원점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이렇 듯 중요하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원고를 쓰고, 마감 기간 엔 인스턴트를 달고 산다.

 

추석이다 뭐다 주는 대로 다 먹었더니 몸도 무겁고 피부도 탁해졌다. 친구는 추석 연휴를 보낸 후 만난 나를 보고 “설 과 추석을 함께 보냈니?” 하며 놀려대곤 한다. 이제 건강 검진도 다가왔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살을 빼야겠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살도 만병의 근원이다. 이 번 건강검진 결과지엔 부디 짤막한 코멘트가 적혀 있길 기대해본다. “기분도 울적한데 한잔할까?” 하는 친구의 유혹을 “언제는 안 우울했니?”라며 단칼에 잘라버리고 나 는 지금 야근 중이다. 이게 또 무슨 소용인가. 돌고 도는 인생사여.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병원에 가야만 비로소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을 정말 싫어하지만, 아이러니하 게도 건강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평소 부모님 이 채소 잘 챙겨 먹어라, 끼니 거르지 마라, 술 많이 마시지 마라, 운동해라라고 그토록 얘기해도 잔소리로 치부하며 귓 등으로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딘가 슬슬 아프기 시작하거나 끝내 크게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 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게 힘들어질 때쯤 핑계를 대며 미뤘 던 운동을 하러 나가고, 다리를 다치고 나서야 걷는다는 것 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근에는 장염에 시달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행위가 굉장히 행복한 일임을 절실히 체감 했다. 그래서 다시 튼튼한 위장으로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 기기 위해 유산균과 각종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기 시작했 다. 유일하게 아프지 않고도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드 는 때가 바로 건강검진 이후다.

 

몇 년 전만 해도 건강검진을 하면 크게 이상이 있다는 얘기 를 듣지 않았기에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 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중 아픈 날은 열 손가락 안에 꼽혔고, 걸리는 질병이라고는 감기 또는 장염 정도였다. 누구나 한두 개쯤 있는 충치도 없어 치과는 스케일링할 때만 방문했다. 심지어 코로나19에 감염된 적도 없다. 이토록 타고나길 튼튼 한 신체를 가진 덕분에 재작년 건강검진 때도 가벼운 마음으 로 의사 앞에 앉았다가 처음으로 건강 상태에 대해 되돌아보 게 됐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공복 혈당 수치가 높은 편 이라는 말에 아차 싶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 1층 카페의 바닐라라테에 맛을 들여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하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때는 아이스크림이나 달달 한 간식을 아무리 먹어도 멀쩡하더니 나이가 드니 내가 먹은 것들이 몸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이젠 건강 한 식습관을 유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어진 문진에 대 답하며 또 한 번 내가 몸을 방치하고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 났다. “운동은 일주일에 몇 번 하나요?” “한두 번이요.” “술은 일주일에 몇 번 마시나요?” “5일 정도 마시는 것 같아요.” 의 사의 질문에 대답하며 내 몸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몸에 해로운 습관을 모두 모아 꾸준히 하며 살고 있었으니 말 이다. 그 후 약속 자리에서 마시는 술은 어쩔 수 없더라도 혼술은 최대한 줄이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갔다. 당이 든 음료와 음식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때의 다짐을 온전히 지키고 있느냐 묻는다면 부끄 럽지만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그 날의 결심은 금세 잊고 지키려고 했던 건강한 습관도 몇 달 안 가서 흐지부지됐다.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내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 짐을 한다. 작심삼일도 열 번 하면 한 달이고, 결국 끝까지 포 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니까. 다시 커피와 술을 마시는 횟수를 줄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요며칠 하지 않았던 운동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자극적인 음식도 피해 최근 연 약해진 위장에 휴식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언젠가 또 병 원에서 내 몸에 미안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기 전에 말이다.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

 

최소한의 예의

 

얼마나 형편없는 생활을 이어왔는지 돌아본다. 건강검진 시즌이다.

 

1년 중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날이 얼마나 될까? 스 마트폰 갤러리를 열었다. 언제 찍은 줄도 모를 고주망태 상 태의 사진이 줄을 이었다. 안주 사진을 찍는 데는 왜 이렇게 집착했는지 모를 일이다. 세어본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 까?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1년에 딱 한 번, 건강검진 날이 다가올 때면 라이프 사이클을 점검한다. 힘껏 긍정 회로를 돌려보지만, 결국 후회와 반성으로 끝맺음을 한다.

 

건강검진에 앞서 작성하는 문진표를 펼쳐놓고 자신과의 싸 움을 벌인다. 일주일에 몇 번 음주를 하는지 체크할 때는 양 심과 체면 사이에서 갈등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양심을 선택하는 게 백번 맞지만, 문진표와 내 얼굴을 번갈아보던 몇 년 전 의료진의 눈빛이 아른거렸다. 그 눈빛의 방향은 한 심함이었다. 이해한다. “날씨야, 추워봐라. 내가 옷을 사 입 나. 술 사 마시지”라는 무식한 구호가 훈장이었다.

 

그래도 젊음은 강했다. 몸을 아끼지 않은 것치곤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으니 말이다. 검진을 다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을 들이켰다. 젊음을 무기로 알코올과 끈끈한 의리를 확인했다. 젊음에 대한 믿음이 지나친 탓이었 을까? 아니면 믿을 만한 구석이 안 됐던 것일까? 천년만년 건강할 것 같았던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너무나 갑작 스러웠다.

 

지난해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바삐 돌아가는 건강검진 공장 속에서 직원의 지시에 따라 장소를 옮겨 가며 필요한 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검진을 마치고 스스로 건강을 진단한 뒤 술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집으 로 날아든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다소 무거운 단어들이 열거 돼 있었다. 위·장·소변 검사에서 재검사를 요구했고, 부모 님이 한평생 고생하고 있는 만성질환까지 의심된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젊음은 무기로 내세울 게 아니라 소중하게 지 켰어야 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재검사 결과는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다만 식단 관리와 라이프 사이클을 전면 보수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그때부터였을까. 한평생 고민해본 적 없던 탄단 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밸런스를 생각한 뒤 음식을 섭 취하고, 시간대별로 복용해야 하는 영양제를 체크한 뒤 입에 털어 넣는다. 취미 운동도 생겼다. 아쉽게도 술은 끊지 못했 다. 아니, 아직은 그럴 의지가 없다. 다만 기억이 통으로 사 라지거나 몸을 학대하는 수준의 과음과는 멀어졌다. 적절한 날에 적당량의 술을 마신다.

 

또 한 번의 건강검진을 앞두고 돌아본 지난 1년은 나쁘지 않 았다.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이라곤 “비타민은 식후에 섭취 해야 한다”는 게 전부이지만, 컨디션을 체크해봤을 때 이전 과는 확연히 다르다. 잔병치레 또한 다른 해보다 적었다. 문 진표 앞에서 거짓을 고할 일도 없다.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는 중이라고 자부한다. 그동안 건강이라는 숙제 를 성실하게 이행했는지는 검진에서 확인해볼 일이다.

 

 

저작권자ⓒ ㈜서울문화사 우먼센스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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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진이(프리랜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