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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밑반찬

작성일 2022.12.20

위로의 안주

 

 

 

위로의 안주

 

엄마의 밑반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 나는 깨달았다. 안주 중의 안주는 밑반찬이라고.

 

 

나는 엄마가 만든 밑반찬을 좋아한다. 본가에 갔다 돌아오는 날엔 나는 ‘밑반찬 부자’가 된다. 세상 든든하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다. 젊은이들이 한다는 혼술을 나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신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느리고, 그러니깐 ‘꼰대’다. 유행하는 패션이나 인스타그램 성지, 유튜브 콘텐츠에도 무심한 ‘그렇고 그런’ 이모님이랄까. 그런 내가 혼술을 시작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애초에 후배 기자들이 “저는 혼술이 좋아요. 편해요” 할 때마다 “술은 술잔을 부딪히는 게 맛이지” 하며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나다. 한데 지금 누군가가 내게 물어본다면 “술은 TV와 함께 잠옷 차림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당당히 얘기할 것이다.

 

혼술을 하면서 안주에 예민해졌다. 막걸리가 메인 주종인데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 돌고 돌아 결국 ‘밑반찬’에 정착했다. 안주 중의 안주는 밑반찬이더라.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어차피 마실 술이라면) 기름진 배달 음식을 먹게 하느니 당신의 밑반찬을 먹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밑반찬에 열과 성의를 다하신다.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나물 등 나물류는 말할 것 없고, 미역줄기볶음은 애초에 술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떡궁합이다. 연근조림도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예술이고, 호두멸치볶음은 엄마의 필살기다. 진미채볶음이나 콩자반도 안주로 기가 막힌다. 뭐 특별할 거 없는 메뉴지만 나는 이런 밑반찬이 안주로 참 좋다. 잡채가 있는 날이면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술 파티다. 단짠이 지겹다면 달걀프라이 2개를 따뜻하게 해 먹는다. 청담동 고급 이자카야가 부럽지 않다. 국물이 당긴다면 엄마가 해주신 미역국을 데워 먹는다. 사랑의 맛이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잡채를 참 좋아하셨다. 엄마는 할머니 댁에 갈 때면 늘 잡채를 만들어 가셨다. 그때 나는 저 당면이 뭐가 그리 맛있을까 맛있을까 했는데 끓이면 끓일수록 맛의 깊이가 더해지는 게 국물 요리 중의 끝판왕이더라. 엄마는 나물 부심이 있다. 왜 저렇게 나물에 에너지를 쏟을까 싶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 그야말로 한식의 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디서 자란 나물을 고르느냐부터 맛이 천지 차이고, 데치는 정도에 따라 식감도 달라진다. 나물은 고차원 테크닉이 필요한 요리다. 결국 나는 할머니와 부모님, 언니의 식성까지 그, 이해하지 못했는데 40대가 되면서 잡채가 대단한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맛도 맛인데 상 차림을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고급 한정식집의 반찬 중 잡채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어릴 적 친언니는 미역국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저 시커먼 미역 줄기가 뭐가 그리대로 닮게 됐다. 와, 피는 물보다 진하더라.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엔 밑반찬이 가득하다. 모두 안주용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쌀통에 쌀이 가득하면 든든하다 했다면 나는 냉장고에 밑반찬이 가득할 때 부자가 된 것 같다. 아, 행복하다.

 

 

위로의 안주

 

술 고픈 날

 

뜨끈하고 맵싸한 국물이면 게임 끝.

 

갓 스무 살이 되고 처음 친구와 술을 마시던 날. 호기롭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해 입에 술잔을 댄 순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대체 어른들은 이걸 왜 맛있다고 돈을 주고 사먹나 싶을 정도로 알코올 향과 맛이 강렬했다. 소주에 호되게 데인 뒤, 무조건 맥주만 마셨다. 세월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독실한 소주파로 바뀌어 있었다. 자고로 술이란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가장 맛있는 법이다. 끔찍하던 소주 맛이 달게 느껴지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걸까. 새삼스레 되짚어보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떠오르는 일이 없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더니, 역시 옛말 틀린 게 없구나 싶다.

 

어쩌면 소주가 좋아진 계기는 힘든 순간들이 아닌, 맛깔나는 안주 덕분일 수도 있겠다.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은 직후에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을 먹으면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다행히 주변에 맥주파보다 소주파 친구가 많아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무조건 국물 요리를 고르곤 한다. 어묵탕, 김치찌개, 전골 등 수많은 국물 요리 중에서도 한동안 빠졌던 메뉴가 있으니, 바로 나가사키짬뽕이다. 중식당에서 흔히 접하는 빨간 짬뽕과는 달리 하얀색 국물이 특징인 짬뽕이다. 해물이 많아 시원하고 매운맛이 적당히 느껴져 칼칼한 그 맛이 최고다. 그렇다고 담백하기만 하면 술안주로는 탈락인데, 나가사키짬뽕은 구수하면서도 감칠맛까지 느껴져 자꾸만 손이 가고 술이 절로 들어간다. 또 자극적인 맛이 덜해 매운 술안주를 먹었을 때보다 위장도 편안하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고춧가루 팍팍 넣은 매운 국물이 최고인 줄 알았건만. 이태원 골목 어디쯤 자리한 이자카야에서 나가사키짬뽕을 맛본 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한때 매주 주말, 술을 함께 마시던 친구와 만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가사키짬뽕을 주문했다. 심지어 서로 어느 술집을 갈지 논의하다 블로그로 미리 메뉴를 살펴보고 나가사키짬뽕을 파는 곳이 아니면 그 식당은 제외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독하던 나가사키짬뽕를 향한 사랑도 사그라드는 때가 있으니, 바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이다. 그때는 주꾸미볶음을 먹는다. 즐거운 술자리는 나가사키짬뽕, 힘든 날에는 주꾸미볶음을 찾는 식이다. 국물 없이도 소주를 거침없이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메뉴다. 사실 낙지볶음이나 오징어볶음도 괜찮다. 주꾸미볶음은 망원동의 소문난양푼이주꾸미가 내 마음속 원픽이다. 프랜차이즈와 달리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매운맛이 일품이다. 지금은 망원동의 반대편으로 이사를 떠난 탓에 방문한 지 수년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그 맛이 그립다. 오징어볶음은 역시 논현동의 팔당닭발이 최고다. 상호명은 닭발집이지만 오징어볶음이 기가 막힌 집이다. 혀까지 얼얼해질 정도로 자극적인 양념주꾸미를 먹으며 알딸딸해질 즈음, 어느새 힘들었던 감정도 사르르 풀어진다. 아마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해도 주꾸미볶음과 소주 한 병 같이 먹는다면 다 용서할 수 있으리라. 마무리로 볶음밥까지 잊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위로의 안주

 

돌고 돌아 투다리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투다리. 김치우동 한 그릇이면 만사 오케이다.

 

투다리를 사랑한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답하겠다. 최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 선정된 술집에 다녀왔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입에 넣기 아까울 정도로 성의 있는 플레이트, 성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눈과 귀, 입까지 모든 게 즐거웠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함께 있던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에선 이만하고 일어나자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술집을 나섰다. 그렇게 ‘투다리’로 향했다. 메뉴판부터 안정감을 안겨주는 나의 투다리. 요즘 핫 플레이스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영문 메뉴판을 내민다. 게다가 메뉴를 읽어도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없다. 이게 소위 ‘힙’이라고 하던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세대의 감성 속에 점점 마이너가 돼가고 있다. 반면 나의 투다리는 다르다. 정갈한 한글 메뉴판에 은행꼬치, 김치우동, 치즈불닭 등 읽는 동시에 이미지가 연상되는 간단명료한 이름이 적혀 있다. 음식 사진은 덤이다. 이토록 친절하다. 조금도 불편한 구석이 없다.

 

투다리로 말할 것 같으면 메뉴 선택 실패율 0%에 수렴한다. 그만큼 모든 안주가 훌륭하다. 본 재료에 충실한 여러 가지 꼬치 메뉴는 물론 탕 메뉴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중에서 나의 원픽은 김치우동, 한 가지를 더하라면 은행꼬치다. 닳고 닳은 검은 뚝배기에 담긴 펄펄 끓는 김치우동은 맵짠 러버인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안주다. 김치우동을 가운데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끝이 없다.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은행꼬치를 추가로 주문한다. 자극적인 맛의 김치우동과 고칼로리인 소주를 연거푸 들이켠 반성이랄까? 술자리에서 건강을 논하는 것만큼 무지성의 논리는 없지만 은행꼬치는 가히 건강한 맛이라 할 수 있다. 투다리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국물 한 술 떠 입에 넣자마자 감탄이 나오는 김치우동은 단돈 만원이다.

 

지금까지 투다리에서 소주잔을 부딪쳤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특히, 더, 유별나게 애정하는 이들이었다. 누구와도 갈 수 있지만, 아무나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의미다. 빨간 테이블에 마주 앉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편했다. 그래서 사랑했다. 결국 술이라는 건 같이 마시는 사람과의 대화가 맛을 좌우하는데, 투다리에서 마주한 모든 날이 행복했던 것을 보아하니 함께한 이들이 큰 몫을 했나 보다. 투다리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라는 의미다. 이름마저 아름답다. 전국 팔도 어디에서나 투다리 간판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낯선 동네도 갑자기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마음과 마음을 잇기 좋은 김치우동의 계절이다.

 

 

저작권자ⓒ ㈜서울문화사 우먼센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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